[책] 당신들의 20대는 어떠한가요 - 스무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 책이야기



여기 책 한권이 놓여있다. 이제는 초등학생 체육복으로도 촌스러워 쓰지 못하는 샛노란 색 표지의 책이다. 그 위에 하늘색 땡땡이 무늬는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그리고 담배하나 꼬나물고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이 표지의 남자는 도저히 못봐주겠다.



스무살 도쿄
작가 : 오쿠다 히데오
옮김 : 양윤옥




무심코 책장을 넘겨 읽었다.

가게 벽에 걸린 시계에 눈을 던져보니 새벽 1시는 진즉에 지난 뒤였다.
" 야, 전차 끊겼어." 똑같이 시계를 쳐다보던 선배 하나가 좋아 죽겠다는 듯 말했고, 일동으로부터 "아휴~" 하는 자포자기적인 한숨이 새어나옸다. 다시 첫 전차가 운행할 때까지 술자리가 자동적으로 연장되었다. 가게 안에는 온통 학생들밖에 없었다. 여기에 막차를 놓친 학생들이 속속 집결하는 것이 이자카야 '하치베'의 일상이었다.
- 레몬 _ 1979년 6월 2일


뭐야 이거. "이자카야 '하치베'" 가 신촌 어느 술집 이름처럼 보인다. 차 끊긴 시각 술기운이 오른 신촌의 여느 술집이 눈에 아른거리며 소설은 대학생 새내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하아. 결국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총 여섯편의 연작 소설이다. 한 편의 소설은 다무라 히사오의 하루다. 총 6일의 이야기이고 6일을 모으면 히사오의 20대가 된다. 그리고 내 짧은 20대도 포함되어있다. 참으로 재주도 좋다.


레몬 _ 1979년 6월 2일
봄은 무르익고 _ 1978년 4월 4일
그날 들은 노래 _ 1980년 12월 9일
나고야 올림픽 _ 1981년 9월 30일
그녀의 하이힐 _ 1985년 1월 15일
배첼러 파티 _ 1989년 11월 10일



읽는 동안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 별」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 책도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황석영 작가와 느꼈던 세대차이에 어벙벙했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오쿠다 히데오에게서 느끼는 동질감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일본인이고 59년생이다. 부모님 나이 또래의 작가와 20대의 생활을 공유한다는 묘한 느낌이랄까. 하긴, 황석영 작가는 43년 만주 태생이니... 격동의 한국 60년대에 어른이 된 사람의 20대를 2000년대에 어른이 된 사람이 짐작하기란 어려울 테지. 반면, 80년대의 일본은 90년대의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보니 마치 아는 형의 과거를 들쳐보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파릇파릇 새내기 느낌이 물씬 풍기는 '레몬'과 동향(同鄕) 사람과의 선도 아닌 데이트도 아닌 해프닝을 겪는 '그녀의 하이힐'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해야....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녀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가 재밌는건 부인할 수 없다.

내심 전 편의 이야기와 이어지길 바라지만 20대는 그렇게 정체된 시기가 아니다. 길게는 4년, 짧게는 1년 사이에 주변환경은 휙휙 바뀐다. 수많은 변화를 겪고 커가는게 20대가 아닌가. 어떻게든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던 여선배에 대한 짝사랑(혹은 발작)은 한 때의 치기 어린 행동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변화를 겪기에 20대는 소중하고 중요한것이 아닐까.


독특한 서술형태도 신선했다.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시점이면서도 '나'라는 표현은 절대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엔 히사오라는 이름이 떡하니 앉아있다. 느낌 색다르고 좋은걸?


직장생활의 이야기들은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그 쪽 면으론 내가 그와 공유할 것이 별로 없기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날에 겹쳐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암살당한날, 서울과 나고야의 올림픽 경합을 벌이던 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리던 날 등등.. 소설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든 모습이 좋았다. 다만 일본사회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선 내가 아는바가 없으니 아쉬울 따름. 나고야의 사투리, 가수 캔디스의 해체 공연 따위 내가 알리가 없으니..



재미로 읽어보겠다고 집은 소설이 많은 추억을 끄집어 내었고 생각을 던져 주었다. 다행인것은 아직 내 스무살은 절반이상 남았다는 것(우리 기분좋게 나이는 만으로 계산하자구요). 물론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이 바쁘게 사회에 뛰어들고 앞서나가는 모습에 조급함이 생기지 않을 순 없지만 조금은 유연하게 그 조급함을 대처할 수 있을 자신감이 생겼다. 조급해하면 지는거다.


읽는 도중 문득 친구에게 말했다. "나 이 작가 좋아하게 될것 같아." 허허. 다음 읽을 작품은 공중그네? 인 더 풀? 남쪽으로 튀어? 벌써 고민하고 있다.


젊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근데 평론가라는 건 본인은 실패를 안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안 된다는 게야.
- 봄은 무르익고 _ 1978년 4월 4일





남의 속마음을 들으면 어쩐지 나 자신까지 치유된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면 용기가 솟구친다. 도쿄의 에너지는 분명 수많은 사람의 에너지다.

..중략...

군중이 장벽을 기어올랐다. 양손을 높직이 하늘로 쳐들고 있었다. 불꽃이 올라갔다. 환성이 메아리쳤다.
"동서냉전도 끝났군." 오구라가 불쑥 말했다.
"좋은 일 아니냐?"라는 미와. "세계는바야흐로 물이 올느 거야. 이게 시작이지."
"우리도 그렇다면 좋을 텐데." 히사오가 취기 오른 머리로 말했다.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 라는 건가."
- 배첼러 파티 _ 1989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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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EAM & FLY : [책] 인더풀 - 오쿠다 히데오 2009-03-15 12:49:45 #

    ... 지만 미치광이와 천재의 차이는 참으로 미묘한 것이라서 금방 "아니야, 이건 미치광이에 가까워." 라는 결론을 내게 만든다. 그래도 즐겁고 유쾌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스물살, 도쿄」에서 접한 그의 문체는 비슷한듯 했지만 다루는 주제가 달라 처음엔 그 사람 맞나 싶기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가벼운 심리적 증상들을 과대하게 포장시킨 등장인 ... more

덧글

  • 승혜 2009/02/20 16:43 # 삭제 답글

    헐, 안맞는말이지만 왠지 되게 현실적이다 ㅋㅋㅋㅋ
  • oskar 2009/02/20 16:52 #

    헐, 전 곰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 ㅋㅋㅋㅋ
    무엇이 안맞는말인것인가요 ㅋ
  • 승혜 2009/02/21 23:01 # 삭제

    이제 내가 곰으로보이고 ㅠㅠ
    20대 청춘에 '현실적이다'라는 말이 좀 안어울려서 ㅋㅋ
  • 승한 2009/02/20 17:01 # 삭제 답글

    형 대학생 새내기때면 무려 4년전 이야기임? ㅠㅠ

    주변 친구들이 전역하는거보면 공익이 왠지모르게 긴것같음.................
  • oskar 2009/02/20 17:20 #

    벌써 4년전?..... 하하
    너가 늦게 갔다는 생각은 안드니?ㅋㅋㅋ

  • Anonymous 2009/02/20 20:02 # 답글

    너 새내기때면 4년전... 어? 기억이 없다?
  • oskar 2009/02/23 09:55 #

    암흑의 시기였군요 ㅋㅋㅋ
  • 랭보 2009/02/21 08:50 # 답글

    오쿠다 히데오, 정말 글 잘 쓰는 작가예요.
    남쪽으로 튀어와 면장선거를 읽고 완전 팬이 됐지요.
    감각과 묵직함과 유머를 겸비한 작가라 생각했어요.
    울나라 작가 누구와 비견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떠오르지 않을만큼 독특하기도 했고.......

  • oskar 2009/02/23 09:56 #

    자전적 소설인 이 책만 봐도 유머와 묵직함이 오가는 것이 좋더군요.
    그의 다른 책도 얼른 보고 싶네요 ㅎ
  • 이교 2009/02/22 01:35 # 답글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 - 공감'''' ('ㅇ')/

    '인더풀'은 영화도 재미있어요 (속닥속닥)'''
  • oskar 2009/02/23 09:58 #

    전 아직 인생이 시작되지 않은 청춘이랍니다 하핫
    인더풀 ... 책먼저 볼까요 영화먼저 볼까요?ㅎ
  • 금드리댁 2009/02/22 09:25 # 삭제 답글

    젊다는 건 특권이야!!! 우와우~ 정말 공감이여 ^^
  • oskar 2009/02/23 09:59 #

    그 특권을 잘 써야하는데..
    잘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ㅎ
  • 수윤 2009/02/22 13:56 # 삭제 답글

    요즘 군도 좋아졌는지 이런 책들도 진중문고로 들어오더군요. 많이 읽어야겠어요 ㅋ
  • oskar 2009/02/23 09:59 #

    책 많이 읽어라 ㅎ
    네 편지는 잘 받았다. 답장은 ㅂ이가 할거다 하하
  • 날라리 2009/04/22 17:10 # 삭제 답글

    남쪽으로 튀어 추천이요~
  • oskar 2009/04/23 10:27 #

    마침 다음 오쿠다 히데오 작품으로 읽을생각이예요 하하
    추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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