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 문제적 수작 & 진중권 교수 씨네토크 ■ 영화이야기




0. 2009. 5. 7. 오후 8시 광화문 씨네큐브

영화보다 진중권교수와 함께하는 씨네토크에 더 흥미가 있어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도 나쁘지 않았고 씨네토크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요즘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 따위는 애교로 봐줄만한 가족 잔혹사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다(그렇다고 잔인한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이지만 싼티는 나지 않는다. 내용에 있어 '이게 뭐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괜찮았다. '거장'이라는 수식이 붙은 감독의 연출력은 이런거구나.


1. 감독 : 시드니 루멧

국내엔 다가오는 14일 개봉이지만, 이미 2007년 개봉작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유명한 감독이라는데.. 그 작품은 1957년 작이다. 거장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했더니.. 무려 83세의 나이에 이 영화를 찍었다.



2. 연기파 배우들.

<다우트>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배우이자 감독, 작가까지 겸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에단 호크,<더 레슬러>의 마리사 토메이,<에린 브로코비치>의 알버트 피니. 얼굴만 봐도 "아! 어디서 봤는데" 하고 떠올릴 수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각자가 맡은 인물의 성격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특히 남자 삼인방의 연기는 짝짝짝. 배우 이름만으로도 관객 모을 수 있을듯하다는 생각이다.



3. 세계 주요 영화제 11회 수상, 12회 노미네이트.

수상경력이 화려하다고 영화에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닌데다, 오히려 요즘엔 상받은 영화라 하면 재미없을거란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하는 것을 보면 수상내역은 더이상 큰 홍보가 되지 않는듯 하다.





(밑의 글은 영화 보신 분들과 보지 않으실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4.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30분간은 천국에 있기를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




영화가 시작하면서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로 제일 처음에 뜨는 문장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지나(마리사 토메이)의 정사씬.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정사씬은 충격적이고 쉽게 영화의 몰입을 도와준다. 둘은 잠깐이나마 매우 행복해 보이고 영화는 바로 범행 하루 전날로 넘어간다. 악마가 죽음을 알기전 30분간의 천국은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위의 문장은 아일랜드의 건배(?) 문구에서 비롯된 말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May you have food and raime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forty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대략 '너에게 의식주가 보장되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 40년간은 천국에 있기를...' 이런 뜻.


적절히 제목을 잘 따온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의 첫인상은 영화 제목과 포스터가 크게 좌우하는데 막장드라마 스럽지 않은 제목이라 구미가 당기게끔 잘 만든듯 하다.





5. 시놉시스

마약 중독에 분식회계로 돈이 궁한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그의 동생 행크(에단 호크)는 자녀 양육비조차 제대로 대지 못해 더 심각한 상태다. 그 와중 회계 감사에 압박을 느낀 앤디는 행크에게 부모님의 보석 가게를 털자고 제안을 하고, 역시 돈이 필요한 행크는 망설임 끝에 동의를 한다. 계획 실행 당일. 소심한 행크가 과격한 친구 바비를 끌어 들이고.. 모든 비극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6. 장남의 비극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관계다. 어찌보면 모든 비극의 시작은 가족관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보석상을 털자는 생각을 한 앤디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있는 장남이다. 잘난 자식보다 못난 자식에게 더 애착이 가는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마냥 아이같은 둘째 행크에게만 향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외로움을 느끼는 장남이다. 책임감이 강한 능력있는 첫째 아들이면서 가지고 있는 불만은 표출하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 그는 가장 불운한 장남을 대표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는 그동안 신경쓰지 못한점, 관심을 덜 준것에 대해 앤디에게 사과한다. 앤디는 돌아가는 차에서 "It's not fair!!"를 외치며 오열한다. 한 평생 외롭게 자랐는데 이제와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그 모든 것을 덮으려 한다는 것이, 그렇게 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보면서 괜히 같이 울컥했다. 정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연기는 대단했다.




7. 결핍의 문제

이 영화는 결핍을 다루고 있다. 앤디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이자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부부관계도 제대로 갖지 못한다. 앤디 동생 행크는 능력없고 우유부단한 소인배로 자신감 결핍이다. 게다가 그가처한 재정적인 궁핍도 비극으로 치닫는 길을 여는데 한 몫한다. 앤디에게서 남편의 다정함을 전해받지 못하는 지나도 남편사랑결핍으로 행크와 관계를 갖는다. 앤디와 행크의 아버지, 찰스는 아내를 잃고 그에 따른 결핍감을 범죄자를 쫓는데 모두 쏟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아들을 죽이는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너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슬프면서도 잔혹하다.

감독은 현대 사회의 여러 결핍을 이렇게 한 가족안에 모두 집어넣었다. 그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모든 결핍이 나오고 그 중엔 나에게 해당되는 결핍이 한두개 숨어있기 때문에...




8. 이것저것..

잘 쓰여진 드라마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멜로 드라마에선 스토리가 캐릭터를 결정짓는다

시드니 루멧 감독


감독은 이 영화를 멜로 드라마라고 규정했다. 이 전대미문의 가족잔혹사 이야기는 캐릭터를 확실히 잡아주었다. 두 시간의 영화에서 앤디와 행크, 찰스는 뚜렷하게 이미지가 잡힌다. 그만큼 성격묘사가 잘 되어있는 작품인것 같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가 참으로 잘 짜인듯.



이 영화를 보다보면 앞뒤를 오가는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전개 때문에 <메멘토>가 생각난다. 초점과 시간을 변화시켜가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덕분에 영화보는 2시간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같은 장면도 초점이 변화하며 나오는데 늘어지는 느낌을 받지 않고 부드럽게 전개된다. 진중권 교수는 이를 서사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9. 앤디는 왜 바비 아내의 오빠를 죽였는가에 대한 생각.

어차피 바비 아내의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상과 마약을 하러 온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근데 왜 앤디는 그렇게 다 죽였을까? 그에 대해선 두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1. 앤디는 행크에게 오빠를 보고 판단하자고 말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상도 죽이고 그 자리에 있던 손님도 모질게 죽인다. 돈을 들고 만난 오빠는 한눈에 악질이라는 것이 보인다. 돈이 떨어지면 또다시 협박하려 들것이 뻔해보인다. 후환은 없애야지.

2. 앤디는 이미 브라질로 가기로 준비를 마친상태였다. 예상대로라면 마약상 한 사람만 죽이고 돈을 오빠에게 건내고 사라지면 끝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손님이 있었고 결국 계획에 없던 살인을 벌인다. 그렇게 마약상도 죽이고 탄력(?) 받았다. 어차피 비행기로 브라질로 뜰거 싹 죽여버려? 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도..


어쩌면 위의 두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10. 진중권 교수와의 씨네토크. - 그리스 비극

늦은 10시에 영화가 끝나고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진중권 교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달까.

진중권 교수는 이 영화를 그리스 비극으로 풀어냈다.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 엘레오스(연민-상대의 아픔이 마치 나의 아픔인양 느끼는 감정)와 포보스(공포-나도 저런 비극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레오스와 포보스를 느끼는 이유는 주인공이 우리와 다른 악인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앤디를 악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의 범죄 동기와 계획은 악인이라고 몰아붙이기엔 모자라는 면이 있다. 그의 계획은 아무에게도(보험사를 제외하고) 해가 되지 않는, 이상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돈이 정말로 급할 때 누구라도 생각해봄직한 범죄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범죄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고, 그것을 통제 못하는 앤디와 행크는 결국 파멸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팽배한 시대에 "너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막차의 압박으로 아쉽게도 씨네토크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하고 질문시간에 자리를 떴다. 한 두개의 질문이 오가면서 그의 입이 풀리는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다음 기회가 또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11.
박쥐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해석하고 의미 붙이기 나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분석하면서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안그래도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쉬려고 찾은 영화관에서 이런 영화를 보면서 기분을 풀 수 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대중에게 크게 호응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생각 거리를 던져주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선 괜찮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덧글

  • 카바론 2009/05/12 17:09 # 삭제 답글

    등장인물들 생긴것만 해서도 정말 불쌍한 티가 막 나는 것처럼 생겼군요. (-_- );;
  • oskar 2009/05/13 09:12 #

    좀 그런면이 있어요. 밝은 영화는 아니니 말이죠 ㅎ
  • 2009/05/12 23:46 # 삭제 답글

    에단호크 멋있어 ㅋㅋ
  • oskar 2009/05/13 09:10 #

    이 영화에서는 별로 안 멋있던데;; 너무 찌질해 보였잖아 ㅋㅋ
  • 나름뉴요커 2009/05/13 00:46 # 답글

    꺄아~ 에단호크 +_+
  • oskar 2009/05/13 09:11 #

    에단호크도 늙었더라구요. 흐흐
    이 영화에선 하나도 멋있게 안나와요 ㅎㅎ
    (질투하는건 아닙니다....)
  • 눙누낭나 2009/05/13 09:51 # 답글

    영화 감상에다가 진중권 교수와 이야기까지. 흑흑,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분명히 가고 싶어했을 자리네요. 영화 내용도 정말 재밌어 보이고 말이에요.
  • oskar 2009/05/13 15:23 #

    전 씨네토크를 끝까지 못들은게 너무 아쉬워요. 진중권 교수의 입이 슬슬 풀리려던 차에 나왔거든요. 씨네 아트에서 소개해 주는 영화는 이제 그냥 믿고 보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제 취향이랑 잘 맞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전 취향이 분명하지 않은걸지도 몰라요. 공포영화를 제외하곤 가리지 않고 보는것 같거든요.
  • 승혜 2009/05/17 10:41 # 삭제 답글

    아 근데 이거 너무 어렵다
  • oskar 2009/05/17 12:13 #

    영화가 어렵다는 거예요?
    영화는 하나도 안 어려워=ㅁ=
    그리스 비극으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지요 허허
  • 승혜 2009/05/17 23:41 # 삭제

    '글'이 어려워......
  • oskar 2009/05/18 09:19 #

    제가 우리말 구사능력이 떨어져서 그런걸지도 몰라요 허허
    제가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다니..
  • yesol 2009/06/08 16:51 # 삭제 답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팽배한 시대에 "너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 이 대목에 '동감'합니다. 영화 보고 나서 내내 기분이 찜찜했었거든요.
  • oskar 2009/06/08 16:56 #

    영화를 끝까지 불편하게 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서사의 힘이었던 듯해요. 행크와 앤디가 악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게끔 만든것에 그런 의도가 깔려있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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