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 혼자 엄청 울었네. ■ 영화이야기



밤 10시. 마산의 상업지구엔 사람들이 많다. 멍하니 같은 버스에서 내린 사람을 따라 걸었다. 지하도를 건너 어느 번쩍번쩍한 술집으로 총총히 들어간다. 계속 뒤따르려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모두가 일행이 있는 이곳에서 난 어디로 가야할까.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린다. 술집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평소 같으면 냉큼 고개를 돌렸을테지만 낯선 도시의 밤거리여서 그랬는지 빤히 눈을 마주쳤다. 3초는 무척 길다는 생각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맥주 생각도 나지만 혼자 술집에서 청승떨며 술을 마시고 싶진 않고 그냥 길을 따라 걷다 영화관이 눈에 들어온다. 해운대, 국가대표, 그루지3, 블랙. 영화를 볼까?

내일 첫차는 아침 8시 20분. 영화는 11시 10분 시작, 새벽 1시 24분 끝. 괜찮을까? 고민고민 하다가 타지에서 언제 또 심야영화를 봐보겠어, 하는 마음에 결제. 사실 사소한 일에 혼자 상처받고 있다가 혼자 풀어야지 어쩌겠어 하는 마음에 영화를 택하기도 했다.

관람객은 총 5명. 연인 두 커플과 나. 연인의 애정행각 따위로 영화감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 그들 앞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영화에 홀딱 빠져 보았다. 엉엉엉







전에 예고편을 보면서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블랙. 사실 예고편이 내용의 전부다. 뻔한 이야기. 헬렌켈러와 셜리번 선생님이 떠오르고, 예상되는 뻔한 이야기.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내는 선생님. 그 뻔한 이야기에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사실 영화관에서는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옆사람, 주위사람 신경쓴다고 눈물만 몇 방울 맺히고 흐르고 마는게 전부였는데 옆엔 사람도 없고 시간은 늦은 시간.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울었다. 원래 잘 우는 성격이지만 이렇게 울어본건 정말 오랜만이네. 어떻게 될지 다 알겠고, 예고편에서 본 그 장면인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글자를 깨우치는 장면엔 왜 그리도 약한지, '더리더'를 보며 'the'에 동그라미 치는 한나를 보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water를 수화로 쓰는 그 장면에 약하디 약한 울음보가 터졌다. 그 이후론 계속 울면서 웃으면서 봤다. 사실 울면서 보느라 이야기도 매끄럽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뻔하게 감동을 주는 장면에선 맥없이 눈물을 흘렸고 혼자 감정이 격해져 꺼이꺼이 소리가 날뻔한걸 참느라 애먹었다. 아마 영화관에 혼자였으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봤을지도...


선생님 역의 아미타드 밧찬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인도의 국민배우다. 처음 등장부터 심상치 않고 마치 연극을 하는듯, 뮤지컬을 하는듯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처음엔 놀랐으나 나중엔 정말 좋더라. 연기를 정말 잘해. 주인공 미셀 맥날리를 연기한 라니 무커르지도 정말 대단해. 언제나 장애를 지녔던 사람을 연기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고 멋지게 해낸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역도 대단한 연기를 펼쳐주었다. 그래서 더 감동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도 사람들이 행복 지수가 높다는데, 영화도 늘 즐거운 것만 좋아한다고 한다. 즐겁지 않으면 관객을 끌 수 없기에 늘 해피엔딩이라고. 이 영화도 전형적인 인도영화를 따른다. 단체 군무와 인도식 음악은 흐르지 않지만 기본이 되는 해피한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 홍보 리플렛 뒷면 절반을 차지하는 홍보문구들이 거슬렸다. 온통 칭찬 일색의 덧글들과 높은 평점만 들이밀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뒷배경 이야기나 배우,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

두시간이 살짝 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엔딩크레딧이 다 오르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단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펑펑 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고.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예의기도 했고.

원없이 울고 나왔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벌개진 눈을 보니 웃음이 났다. 영화를 보기 전에 서운함들은 싹 가시고 행복한 마음만 가득했다. 실컷 울었더니 마음마저 정화된 모양. 가끔은 이렇게 울어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눈물로 영혼을 씻어내는 기분이야. 물론 혼자 있을때만, 그리고 술 안 마셨을 때만. 예전엔 툭하면 눈물이 나는 여리딘 여린 감정이 남자로서 싫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좋다. 남들 앞에서 쉽게 울지 않을만큼 조절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처럼 마음껏 울고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낯선 도시에서 심야로 만난 영화는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시간이 오래 흘러도 이 영화는 잊지 않을듯 하다. 낯선 도시의 밤 거리와 함께 기억되겠지. 벌개진 눈으로 찜질방 표를 사는데 매표원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오른편엔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 금지 라고 적혀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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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교 2009/09/04 18:45 # 답글

    조만간 저도 울어야 겠는데요 :)
    알찬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아서 누나도 기뻐요~

    - 찜질방에서의 나이 검사!!! (부럽)ㅎㅎㅎ'' - 역시 동안이시군요('ㅇ')/
  • oskar 2009/09/07 03:46 #

    동안하면 이교누님이지요. 'ㅡ'
    이교님은 혼자 방에서 보면서 펑펑 울것 같아요.
    다 울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어요 :)
  • 영호 2009/09/04 23:37 # 삭제 답글

    나 출국하기 전날 최초로 영화 시사회 당첨되서 본게 이 영화였는데~
    나는 사람이 많아서 울지는 못 하고 그냥 훌쩍훌쩍 했던 기억이...
  • oskar 2009/09/07 03:46 #

    최근에 영화 많이 봤더만 ㅎㅎ
    사람 적은 심야영화의 매력이 있더라.
    얼른 블로그를 개설하고 여행사진으로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렴 ㅎㅎ
  • 승혜 2009/09/05 09:36 # 삭제 답글

    이거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볼 일이 있을런가 모르겠다
  • oskar 2009/09/07 03:47 #

    시험은 잘 보셨어요? 'ㅡ'
    시험도 끝났는데 보는것도 괜찮지 않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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