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은 많은데 기록은 줄어든다. 시간이 많이 있다고 기록에 부지런을 떨게 되는 것은 아님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하나 하나 기록에 남기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행동이 따라 주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짧게 나마 기록으로 남겨 두려 한다.
- 책
1. 1Q84 - 무라카미 하루키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인물들이 선명히 살아 있어서 좋다. 하루키는 인물 묘사를 참 잘한다. 주인공 이름이 떠오르면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부터 체형, 얼굴표정에 심지어 목소리까지 떠오른다. 두 명의 교차 서술도 좋았다. 아오마메와 덴고 이야기 모두 좋았지만 둘 중에 한 쪽 손을 들어주자면 덴고의 손을 들어주겠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글도 써서 더욱 좋았다. 무표정 소녀 후카에리의 말투도 매력 있었다. 하루키는 성교장면 묘사가 적나라 한데 이번에도 귀 페티쉬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후카에리가 좋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도 참으로 흥미로웠는데 공기번데기 이야기와 고양이 마을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를 떠받치는 힘을 안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강렬해서 따로 소설을 내도 정말 괜찮다 싶을 정도. 두 이야기 모두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게 하는 매개체 역할도 하는데, 이야기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세번째 책에 대한 기대에 두근두근하다.
평행이론이 아닌 하나의 세계의 노선이 변한다는 설정은 아직 뭐라 말을 못하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달을 많이 쳐다보게 될것 같다. 참으로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지만 지금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한다.
2. 왜 쓰는가 & 빨간 공책 - 폴 오스터
이 두권의 책은 폴 오스터란 작가가 친밀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길지 않은 분량에 빨간 줄이 그어진 책에 자유분방한 글씨체로 쓰여있다. 소설은 아니고 수필이라기에도 뭐한 산문집이다. 폴 오스터 본인이 겪게 된 우연의 사건들을 담담히 들려준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소설보다 더 재밌는게 사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작으니 폴 오스터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간단히 읽고 그의 소설을 읽어도 좋을 듯 하다.
3. 타자기를 치켜세움 - 폴 오스터 글, 샘 메서 그림
그림 책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하다. 폴 오스터가 반평생을 함께 해 온 타자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사실 이 책은 글을 읽는 재미보다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좋은데, 샘 메서의 그림은 타자기의 영혼을 끄집어 내어 그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다 보면 정말로 타자기가 단순한 타자기가 아닌 폴 오스터의 친한 친구로 보인다. 물건에 신앙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원시의 샤머니즘도 생각나고, 어느덧 5년을 넘게 같이 생활하는 노트북도 그냥 기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계속해서 잘 지내봅시다. 친구.
- 영화
4. 아쉬람
인도 영화다. 사실 피곤한 상태에서 보느라 앞부분을 보다 잠들어 다시 볼까 생각하는 영화다. 영상미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간디의 등장은 좀 어색했다. 잠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5.
정말 좋았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저질스럽게 바뀐 한국어 제목과 포스터가 거슬렸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이런 제목을 달고 나오다니! 바르셀로나가 반복되는 배경음악은 비키와 크리스티나와 함께 관객도 바르셀로나로 데려간다. 여행지에 온 사람의 마음이 풀어지는 모습과 자유로운 영혼과 안정을 추구하는 영혼간의 사이에서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관객에게 쉼없이 "당신이라면 어느 선택을 하겠어?" 라고 묻는듯 하지만 정작 답은 내릴 수 없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더그와 그의 친구들을 바르셀로나에서 만나 양탄자 이야기 하는 부분. 비키가 느끼는 숨이 꽉 막혀오는 답답함을 같이 느꼈다. 이대로 살아도 좋을까.
스칼렛 요한슨은 우디 앨런의 전작 '매치 포인트'의 역할과 비슷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아있다. 우디 앨런이 스칼렛 요한슨의 개성을 잘 끌어내준다는 느낌이다. 금발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다.
바르셀로나로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제목에 도시 이름을 넣어주는 조건으로 촬영허가를 내주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매혹적인 도시로 잘 그려졌다. 가우디의 건축물이며 지중해 분위기에 흠뻑 빠져 영화 보는내내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6. 인 디 에어
마음 약한 사장들을 대신해 해고를 도와주는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의 일하는 모습을 통해 해고 하는 자와 해고 당하는 자, 그리고 늘 여행길에 올라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가방을 비우라는 철학으로 가족과도 등지고 일년에 300일 이상을 출장다니는 그의 삶을 통해서 과연 무엇이 자유로운 삶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미국의 곳곳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고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서 나오는 실직자의 한을 담은 노래 ' Up in the air'에 웃었다. 해고 당하는 사람과 해고 하는 사람 두 사람 모두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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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름 옆엔 감독 이름인데 기억 나지 않는 것들은 비워 놓았다.
이렇게라도 쓰고 나니 며칠 묵혔던 숙변을 내보는 것처럼 시원하다.



덧글
오스카 가 언급한 그 장면의 내 느낌도 비슷.
(막막하고 커다란 벽 같은 관계들, 그 숨막힘..)
셋이 동거 중 자기만 잘하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크리스티나에게도 공감.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작 중요한 것들은 무엇이간에 대한 생각 많이 함.
뭔가 표현하고픈 충동들은 내면 가득 쌓여있는데
그 분출 법을 몰라 이것 저것 해 봤다는 안토니오에게도 공감.
우디 알렌식 비꼼과 지적 유희들이 보는 내내 행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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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털어내는 순간, 그 쾌변같은 시원함에 건배를!!
며칠 아프던 몸도 많이 좋아진걸 보면 확실히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쾌변같은 그 시원함에 건배를!!
오히려 이럴땐 제가 약한 것 같기도 해요 ㅎㅎ
책책책 :)
그 동안 보약을 먹고 있었는데 내일이면 끝나요. 보약 때문에 못 먹었던 음주를 신나게 해줄테다!
이거 뭐 엄청 거창한 결심이죠? 네네.
술 못 마시면 엄청 괴로워요! 전 사랑니 빼서 술자리에 참석하면서도 못마시는 고문을 당했었는데 오늘 갈비 뜯으면서 소주를 마셨더니 온 몸에 피가 확확 뿌어져 나가고 원기가 차오르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적당한 음주는 좋습니다. 암요.